올 들어 잡코인 가운데 가장 화제가 된 게 ‘월드코인’이다. 은색 구슬처럼 생긴 홍채 인식 기구에 자신의 홍채를 등록하기만 하면 코인 수십 개를 무상으로 받을 수 있어 세계 곳곳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국내에 문을 연 월드코인 행사장들도 공짜 코인을 받겠다며 대기표를 받아든 이들로 북적였다. 그런데 행사장마다 눈에 띈 건 20, 30대보다 지인들과 삼삼오오 온 장노년층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줄 선 노인들도 많아 코인이 뭔지 제대로 알고 온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의문이라는 얘기가 돌았다.
▷요즘 우후죽순 열리는 잡코인 투자 설명회도 젊은 세대보다 장노년층이 훨씬 많이 목격된다. 이쯤 되면 젊을 땐 공격적인 투자를, 나이 들면 수비적 투자를 한다는 말이 옛말이 된 듯하다. 하지만 잡코인 중에 정체를 알 수 없거나 시세 조종의 표적이 되는 게 상당수다. 월드코인도 “민간 기업이 개인의 생체정보를 마구잡이로 수집한다”, “실체 없는 폰지 사기다”라는 논란 속에 일부 국가가 사업을 중단시키면서 보름 만에 가격이 반 토막 났다.
▷비트코인 가격이 1억 원을 오르내리며 불장을 이어가자 덩달아 기승을 부리는 것이 가상자산 사기 범죄다. 지난해 경찰에 검거된 코인 범죄자는 1000명에 육박하며 1년 새 3배 넘게 급증했다. 카카오톡 등으로 특정 코인의 매매를 부추기는 ‘코인 리딩방’은 흔한 일이 됐고, 코인을 발행하겠다며 연예인, 운동선수 등을 앞세워 투자를 받은 뒤 잠적하는 ‘스캠 코인’이 성행하고 있다. 거래소에 상장된 종목과 이름만 같은 가짜 코인을 싸게 준다고 속여 돈을 가로채는 사기도 잦다.
▷그런데 코인 사기에 연루되는 장노년층이 늘고 있어 걱정스럽다. 최근 9개월 동안 금융감독원에 접수된 가상자산 사기 피해 3건 중 1건이 50대 이상의 신고였다. 올 들어선 60대 이상에서 피해 신고가 60% 가까이 급증했다. 장노년층 ‘코인 개미’ 가운데 노후자금이나 퇴직금 같은 목돈을 투자하는 큰손이 많다 보니 사기범들의 주요 타깃이 되는 것이다. 국내 가상자산 투자자 606만 명 중 1000만 원 이상의 코인을 보유한 사람이 20, 30대를 통틀어 10%도 안 되지만 50대와 60대 이상에선 각각 13%나 된다.
▷여기에다 장노년층이 블록체인, 대체불가토큰(NFT) 등 신기술에 익숙지 않다 보니 사기에 쉽게 현혹되는 편이다. 경기 불황을 틈타 매달 연금처럼 배당금을 준다고 꼬드기는 코인 사기에 노인들이 넘어가기 십상이다. 소득 없는 고령층이 한번 금융사기를 당하면 회복이 불가능하다. 사회적으로도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코인 범죄를 뿌리 뽑고 노인들에게 피 같은 노후자금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키워 주는 것도 시급한 민생 과제다.
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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