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독의 반란은 스포츠를 보는 가장 큰 재미 중 하나다. 스타가 즐비한 강팀이 떨어지면 익숙한 얼굴을 보는 재미가 덜해지지만, 반대로 새 얼굴을 보는 기회가 된다. 황금사자기 대회 초반 전통의 강호의 덜미를 잡는 언더독이 속출하고 있다.
율곡고는 14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제74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동아일보사·스포츠동아·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공동주최) 4일째 부산고와 32강전에서 3-1로 이겼다.
2015년 창단한 율곡고가 1947년 창단한 전통의 명문 부산고를 꺾자 경기를 지켜보던 KBO리그 10개 구단 스카우트들도 “역대급 이변”이라고 입을 모았다. 물론 설립연도가 성적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지만 부산고는 정민규, 박성재(이상 18) 등 2021신인드래프트 상위지명이 유력한 선수들이 가득한 강팀이다. 비단 부산고만의 아픔이 아니다. 대회 첫날인 11일 대구 상원고가 인상고에 패한 것이 신호탄이었다. 12일에는 야탑고가 소래고에, 13일에는 경남고가 경기상고에, 경북고가 경주고에 무릎을 꿇었다. 하루에 한 번씩은 이변이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중립으로 지켜보는 팬들의 입장에선 언더독의 반란이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강팀이 못해서가 아닌, 약팀으로 분류된 팀이 잘해서 만든 성과라 더욱 의미 있다. 경주고가 경북고를 누른 것이 대표적이다. 대구·경북지역 최고 명문인 경북고에서 주전으로 뛰기 힘든 선수들은 경주고를 비롯한 인근 학교에 입학한다. KT 위즈 수석코치를 거친 김용국 감독이 짧은 기간 팀을 단단히 만들었다는 평가다. 최무영 삼성 라이온즈 스카우트팀장은 “확실히 전체적으로 평준화가 된 것 같다.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만년 약체로 분류됐지만 최근 동문들의 적극적 지원으로 여느 명문고 못지 않은 시설을 갖춘 강릉고의 약진도 메시지를 준다.
부산고를 꺾은 율곡고 투수 도재현(18)은 “전통의 강팀이라고 이기지 말라는 법은 없다. 강팀과 만나 오히려 우리끼리 더 도움이 됐던 것 같다”고 했고, 방동욱(17)은 “경기 전 감독님이 ‘져도 되니 편하게 하자’고 말해주신 게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예측대로 흘러가는 스포츠는 재미가 덜할 수밖에 없다. 올해 황금사자기에 더 많은 눈길이 쏠리는 이유다.
목동 |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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