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정읍의 전교생이 88명인 인상고가 전통의 고교 야구 명문 북일고를 5회 콜드게임으로 꺾는 이변을 일으켰다. 인상고 4번 타자 이승호(10번)가 4회초 2점 홈런을 때려낸 뒤 더그아웃으로 돌아오며 동료들의 환호를 받고 있다. 인상고는 유력한 4강 후보로 꼽힌 북일고에 15-2 대승을 거뒀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전북 정읍시청에서 국도를 따라 20km를 더 가야 찾을 수 있는 인상고는 전교생이 88명뿐인 작은 학교다. 이 학교에서 야구부에 이름을 올린 선수는 총 27명. 여학생 비율이 낮은 이 학교에서 전교 남학생 중 3분의 1이 야구선수인 셈이다.
창단한 지 7년밖에 안 된 이 작은 학교가 유력한 4강 후보로 꼽혔던 42년 전통의 북일고를 꺾는 파란을 일으켰다. 인상고는 23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제73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에서 북일고를 15-2로 대파하며 마지막 한 장 남아 있던 16강 티켓을 거머쥐었다. 프로야구 스카우트들조차 “이번 대회 최대 이변”이라고 평가했다.
두 팀이 1회에 각각 1점을 얻은 채 맞은 2회초. 인상고는 상대 실책과 판단 미스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빅이닝을 만들었다. 북일고 선발 김양수는 2회초 볼넷, 몸에 맞는 공을 연이어 내줬다. 세 번째 타자 구희수(좌익수·3학년)의 번트를 잡아 3루에 던졌지만 주자가 살아남으면서 무사 만루를 자초했다. 인상고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안타와 내야안타, 희생플라이를 연달아 만들어 내면서 2회에만 5점을 쓸어 담았다.
인상고의 ‘도깨비 방망이’는 3회에도 불을 뿜었다. 선두 타자 유지호의 2루타로 포문을 연 인상고는 이 이닝에서만 2루타 3개를 포함해 안타 6개를 몰아 치면서 타순을 한 바퀴 돌고도 3명이 더 타석에 등장해 7점을 뽑아냈다.
북일고는 16강전을 대비해 아끼려던 에이스 투수 신지후를 점수가 1-13까지 벌어진 3회 2사 상황에서 급히 투입했지만 너무 늦었다. 4회초 4번 타자 이승호의 2점 홈런까지 더한 인상고는 2시간 8분 만에 북일고를 무너뜨렸다. 북일고는 4회말 1점을 만회하는 데 그쳤다. 5회 콜드게임으로 경기가 끝날 때까지 북일고 투수들이 상대했던 타자는 38명에 이른다.
크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학교의 팀 컬러는 이날 경기처럼 ‘닥공’(닥치고 공격)에 가깝다. 인상고는 올해 전반기 주말리그 전라권 B조에서 6승 6패를 기록했다. 이긴 경기 중 10점 이상 득점한 경기가 3번, 9점 경기까지 합치면 5번이나 된다. 지난달 19일 나주영산고와 치른 경기에서는 20점을 내기도 했다. 최한림 인상고 감독은 “작은 시골 학교라 상대 팀처럼 좋은 투수가 없기 때문에 강점인 공격력을 최대한 발휘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날 인상고의 마운드를 책임진 2학년 선발 나병훈도 제 몫을 톡톡히 했다. 공은 시속 120km대 후반으로 빠르지 않지만 면도날 같은 제구력으로 3과 3분의 1이닝 동안 북일고 타선을 2실점으로 막았다. 나병훈은 경기 후 “큰 무대나 위기 상황에서도 떨지 않는 배짱이 장점인데 이번 경기에서 발휘됐다”고 말했다. 인상고는 소래고를 3-2로 이긴 부산고와 25일 8강 진출을 다툰다.
‘서울 에이스’ 휘문고 이민호와 ‘광주전남 에이스’ 광주일고 정해영의 맞대결 16강전에서는 광주일고가 8-0으로 이겨 첫 8강 진출 팀이 됐다. 정해영은 6이닝 2피안타 5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했지만 이민호는 3회에만 3점을 내주며 2와 3분의 2이닝 동안 3피안타 3탈삼진 3실점(2자책점)을 한 뒤 마운드를 내줘야 했다. 이날 휘문고는 실책 6개로 자멸했다. 이 중 5개가 상대 도루를 저지하려다 나온 실책이다. 광주일고 조형우는 6회말 2점 홈런을 터뜨리며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광주동성고도 접전 끝에 포항제철고에 7-6으로 이겼다. 지난해 챔피언 광주일고는 광주동성고와 8강전을 치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