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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의 청춘, 황금사자기… 소년 장효조 박노준 오승환도 포효 꿈꿨다
입력 2026-05-02 01:40:00


⟪황금사자는 늙지 않는다. 전쟁이 대회를 멈춰 세우고, 산업화가 도시 풍경을 바꾸고, 프로야구가 고교야구의 인기를 빼앗았다. 그래도 황금사자는 포효를 잊지 않았다. 그렇게 2일부터 서울 목동야구장과 신월야구장에서 80번째 대회를 치르는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은 “모든 야구 소년이 꿈꾸는 무대”(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가 됐다. 숱한 명승부를 치르면서 수많은 스타를 배출한 황금사자기 80년 역사를 숫자로 돌아봤다.⟫


#1 아직 대한민국 정부도 없던 1947년 8월 21일 오후 1시 10분.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성동원두(城東原頭)’ 서울운동장에서 군산중(현 군산고)과 동산중(현 인천 동산고)이 역사적인 대회 첫 경기를 치렀다. 공식 명칭은 ‘제1차 전국지구대표 중등야구 쟁패전’(당시에는 학제가 달라 현재 고등학교를 중등학교라 불렀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선생 가슴에 있던 일본 국기를 지운 ‘일장기 말소 사건’의 주역 이길용 기자가 황금사자기 창설에도 앞장섰다. 단일 언론사에서 가장 오랜 기간 주최하고 있는 고교야구대회가 황금사자기다.


#3 황금사자기 역사 첫 페이지를 장식한 팀은 경남중(현 경남고)이었다. 경남중은 제1회 대회부터 3연패를 차지했다. 현재까지도 황금사자기에서 3년 연속 우승한 팀은 경남고뿐이다. 당시 경남고는 ‘태양을 던지는 사나이’ 장태영 선생(1999년 작고)이 마운드를 지키던 팀이었다. 최고 시속 140km 이상을 기록한 것으로 평가받는 ‘왼손 파이어볼러’ 장 선생은 황금사자기에서 3년간 무패 신화를 남겼다. 제4회 대회부터 제7회 대회는 6·25전쟁으로 열리지 못했다.


#7 황금사자기 제1회 대회에는 7개 팀이 참가했다. 원래는 전국 8도 대표 8개 팀이 참가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대회 직전 강원중(강원대 전신)에 불이 나는 바람에 학교 건물이 모두 타버렸다. 강원중은 경남중과 황금사자기 역사상 첫 경기를 치를 예정이었지만 끝내 대회에 참가하지 못했다. 그 바람에 군산중과 동산중이 첫 경기를 치렀다. 나중에 프로야구 삼미 슈퍼스타즈 초대 감독을 맡게 되는 박현식 선생(2005년 작고)이 동산중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 황금사자기 역대 1호 투구 기록을 남겼다. 올해 황금사자기에는 57개 팀이 참가한다.


#8 신일고는 황금사자기의 팀이다. 신일고는 창단 이듬해인 1976년 제30회 황금사자기에서 전국대회 첫 우승 기록을 남겼다. 당시 신일고에는 박종훈 전 한화 이글스 단장, 양승호 전 롯데 자이언츠 감독 등이 재학 중이었다. 신일고는 이후 △1978년 △1987년 △1991년 △1993년 △1996년 △1997년 △2003년까지 총 8번 황금사자기를 차지했다. 황금사자기에서 신일고보다 많이 우승한 학교는 없다.

1970년 성남고 노길상 첫 노히트 노런 

1973년 대구상고 장효조 타격 1위, 최다안타

#9 고교야구 전국대회 첫 노히트 노런도 황금사자기에서 나왔다. 성남고 왼손 투수 노길상이 1970년 9월 25일 열린 제24회 대회 준준결승 경기에서 볼넷만 2개 내주면서 당대 최강 경북고 타선을 9이닝 동안 무피안타 무실점으로 틀어막았다. 성남고가 이날 뽑은 점수는 1점, 노길상의 탈삼진도 1개뿐이었다. 성남고는 이해 결승에서 대구상고(현 대구상원고)를 4-2로 꺾고 이 대회 첫 우승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이로부터 55년이 흐른 지난해(2025년)가 되어서야 두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13 황금사자기 결승에 가장 많이 오른 학교는 경남고다. 경남고는 지금까지 황금사자기 결승에 총 13번 올라 7번 우승했다. 덕수고와 함께 대회 최다 우승 공동 2위 기록이다. 그렇다고 황금사자기 정상 도전이 마냥 순탄했던 건 아니다. 경남고는 1974년 제28회 대회 우승 이후 2022년 다시 정상에 서기까지 47년 동안 황금사자기를 품지 못했다. 또 1987년 이후 34년 동안에는 결승 문턱에도 올라서지 못했다.


#16 1962년 열린 제16회 대회 때 우승기와 우승컵이 처음 등장했다. 대회 상징인 황금사자기는 가로 130cm, 세로 90cm 크기로 붉은 자주색 바탕에 사자를 금빛 실로 수놓았다. 우승컵은 순금으로 만든 공을 방망이 3개로 받치고 있는 모양으로 무게가 4kg이 넘는다. 우승컵과 별개로 황금사자 모양 우승 트로피도 있다.

1980년 박노준-선동열의 맞대결을 보려는 팬들

1980년 선린상고 박노준, 선동열 상대 쐐기 홈런

#18 한국 야구에서 등번호 18번을 상징하는 선수는 선동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선동열보다 먼저 이 등번호에 ‘상징성’을 부여한 선수가 있었다. 선린상고(현 선린인터넷고) 박노준이다. 두 선수는 1980년 10월 4일 열린 제34회 결승에서 맞붙었다. 결과는 박노준의 KO 승이었다. 박노준은 1-2로 끌려가던 6회말 2사 2루 상황에서 광주제일고 선동열을 상대로 동점 적시타를 쳤다. 이어 3-2로 앞선 8회말 2사 1루 상황에서는 쐐기 2점 홈런을 쏘아 올렸다. 동시에 마운드에서도 5이닝 2피안타 1실점 8탈삼진을 기록하면서 승리투수로 이름을 올렸다.

1972년 군산상고 역전 우승

#26 1972년 3월 19일 열린 제26회 대회 결승전은 군산상고(현 군산상일고)와 부산고의 맞대결이었다. 8회까지 1-1 동점이던 경기는 9회초 공격 때 3점을 뽑은 부산고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1-4로 뒤진 채 9회말 공격에 나선 군산상고는 1사 만루 마지막 기회에 사활을 걸었다. 여기서 김일권의 밀어내기 몸에 맞는 공에 이어 양기탁의 2타점 적시타가 터지며 4-4 동점. 이어 김준환이 끝내기 역전 안타를 치면서 군산상고가 5-4로 경기를 뒤집었다. 군산상고는 그러면서 여전히 팀 상징으로 통하는 ‘역전의 명수’ 타이틀을 얻었다.


#30 황금사자기에서 한 번이라도 우승한 팀은 30개교다. 그중 세광고(1982년), 경기고(2000년), 김해고(2020년)는 고교야구 4대 메이저대회(황금사자기, 청룡기, 대통령배, 봉황기) 가운데 황금사자기에서만 우승 경험이 있다. 거꾸로 대구고와 대전고는 4대 메이저대회 가운데 황금사자기에서만 우승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

1990년 충암고 심재학 8안타 중 7개가 홈런

#39 위재영은 동산고 1학년이던 1988년 제42회 대회 때 30이닝 동안 평균자책점 제로(0)를 기록하면서 팀 우승을 이끌었다. 위재영은 졸업반이던 1990년 제44회 대회 때도 2회전(16강)에 배명고를 상대로 선발 등판해 완봉승을 거뒀다. 39이닝 연속 무자책점을 기록한 것이다. 그러나 충암고와 맞붙은 8강전에서는 1회부터 실점하면서 기록이 끊겼다. 위재영은 이날 심재학에게만 홈런 2개를 얻어맞았다. 동산고를 3-1로 꺾고 결승에 오른 충암고는 결승에서도 배재고에 13-0 완승을 거두고 황금사자기 첫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최우수선수(MVP)로 뽑힌 심재학은 안타 8개 중 7개를 홈런으로 장식했다.


#100 경기고가 황금사자기에서 유일한 우승 기록을 남긴 2000년은 개교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경기고는 ‘전국대회 우승 프로젝트’를 가동하면서 한서고에서 유망주 한 명을 영입했다. 신일고와 맞붙은 대회 결승전에 톱타자로 나선 이 선수는 홈런을 포함해 3타수 2안타를 치면서 팀의 10-7 승리를 도왔다. 이 경기를 중계한 하일성 당시 해설위원은 “프로에서도 통할 만한 타격 재능을 갖췄다”고 평했다. 이 선수 이름은 오승환이다. 한미일 프로야구 통산 549세이브를 기록한 ‘끝판대장’ 그 오승환 맞다.


#1975 “요즘 전대미문의 가공할 광고 탄압으로 허덕이면서도 동아마라톤을 예정대로 개최했고 전국 일주 사이클의 행렬은 어김없이 전국의 주요 도로를 누빌 것이다.” 동아일보는 유신 독재 정권 압박으로 ‘백지 광고 사태’에 시달리던 1975년 4월 1일 ‘우리의 사업 정신은 곧 스포츠맨십’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광고 수입이 끊긴 상황에서도 동아일보가 ‘비인기 종목’에 대한 투자를 계속할 수 있던 건 황금사자기가 ‘황금알을 낳는 대회’였던 덕이다. 21세기 들어 고교야구 인기가 예전만 못한 게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황금사자기가 도전과 혁신을 멈춘 건 아니다.

2025년 챔피언 성남고

#2026 황금사자기는 2018년 전국대회 최초로 투수 한 명이 하루에 투구 수 105개를 넘기지 못하도록 규정을 손질했다. 2021년에는 역시 고교야구 최초로 비디오 판독 시스템도 도입했다. 또 경남고와 청담고가 맞붙은 2022년 대회 결승전 주심을 김민서 심판이 맡으면서 황금사자기는 여성 심판이 결승전 주심을 맡은 첫 번째 메이저대회로 고교야구 역사에 남게 됐다. 이듬해에는 메이저대회 역사상 처음으로 볼·스트라이크 자동 판정 시스템(ABS)도 도입했다. 요컨대 황금사자기는 전통과 명예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황금사자는 팔순인 2026년에도 여전히 늙지 않았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임보미 기자 bom@donga.com
조영우 기자 jer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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