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끝은 위협적으로 흔들린 반면 멘털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원주고 이병길(3학년·사진)은 제73회 전국고교야구대회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 둘째 날인 18일 목동야구장에서 벌어진 전통의 강호 경북고와의 경기에서 5이닝 1실점으로 호투하며 팀 승리를 견인하고 자신도 승리투수가 됐다. 그는 “강팀이라고 기죽지 않고 타자들을 상대하려 했다”며 “한 개 한 개 던지다 보니 이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날 5회까지 이병길은 한 점도 내주지 않았다. 1실점은 6회초 무사 상황에서 경북의 선두타자인 3루수 고경표에게 허용한 솔로홈런이다. 이 홈런 전까지 이병길이 맞았던 위기 상황은 4회 자신의 견제구 실책 등으로 만든 1사 만루 상황 한 번뿐이다. 이병길은 이때 들어선 경북고 포수 박정환을 3루 앞 내야땅볼로 유도했고 3루수 김재훈은 이 공을 홈으로 던져 실점을 막아냈다. 자신의 존재감과 함께 팀의 탄탄한 수비 조직력까지 입증한 셈이다.
그는 원래 팀 내에서도 에이스로 꼽히지는 않았다. 원주고에는 좀 더 주목받는 하영진(3학년)이 있다. 하지만 안병원 원주고 감독은 이날 이병길에게 팀 운명을 맡겼다. “공의 무브먼트가 좋고 멘털도 강해 경북고의 타선을 잘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는 판단이었다. 그리고 이병길은 이날 감독의 요구에 부응한 동시에 프로구단 스카우트들의 눈도장까지 확실히 찍었다. “변화구가 좋고 경기 운영도 잘한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병길 스스로도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잘 알고 있다. 그는 “프로에 갈 수 있다면 제 강점인 변화구를 더 발전시켜 신정락 선수(LG·32)처럼 변화구를 잘 던지는 선수가 되고 싶다”며 “프로 지명이 되지 않더라도 대학에 진학해 끝까지 도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1차전에서 우리 팀 조직력이 얼마나 좋은지 알게 됐다”면서 “2차전 상대인 충암고는 우승 후보로 꼽히지만 이길 자신을 갖게 됐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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