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고 에이스 하영진(18)은 고교생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차분했다. 18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제73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동아일보·스포츠동아·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공동주최) 1회전에서 경북고를 상대로 6-2의 승리를 거둔 직후였다.
원주고의 초반 대진은 첩첩산중이다. 1회전에서 전통의 강호 경북고를 넘어섰지만, 21일 열리는 32강전에서도 강팀 충암고와 맞붙는다. 마운드의 또 다른 축인 윤영석이 팔꿈치 부상으로 등판이 어렵고, 18일 선발등판해 5이닝 1실점으로 호투한 이병길도 3일 휴식 제한에 걸려 등판이 불가능하다. 그만큼 하영진의 부담이 늘어난 게 사실이다.
하영진은 이날 6회 2사 후부터 마운드에 올라 3.1이닝(55구)을 4안타 1볼넷 1사구 5삼진 무실점으로 틀어막고 승리를 지켜냈다. 포심패스트볼(포심) 최고구속은 141㎞까지 나왔고, 슬라이더와 커브, 체인지업 등 다양한 구종을 섞어 던졌다. 스카우트들은 “평소에는 최고구속이 144~145㎞는 나온다. 오늘은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삼성 라이온즈의 2020시즌 KBO 신인지명회의 1차 지명 유력 후보인 경북고 황동재(5.1이닝 7안타 1볼넷 8삼진 3실점(2자책점))와의 맞대결에서도 주눅 들지 않았다.
2020시즌 KBO 신인지명회의 참가 자격을 갖춘 3학년이다. 10개 구단 스카우트들 앞에서 투구하는 것 자체만으로 부담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하영진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나는 부담 없이, 후회 없이 야구하겠다는 마음으로 공을 잡았다. 지명 여부와 관계없이 최선을 다해 내 공을 던지며 부모님께 효도하고픈 마음뿐”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차분한 목소리만큼 타고난 멘탈(정신력)을 자랑한다. 위기 상황에서 흔들리지 않는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이번 대회 이전까지 올 시즌 11경기(34.2이닝)에서 이닝당 출루허용(WHIP)이 0.86에 불과하다. 스스로도 “자신감과 위기 상황에서 흔들리지 않는 멘탈”을 가장 큰 강점으로 손꼽았다. “오늘은 막판에 다소 흔들렸지만, 동료들의 응원 덕분에 힘을 낼 수 있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최고의 공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롤 모델은 KT 위즈 김민(20)이다. 유신고를 졸업하고 2018시즌 1차 지명을 받은 2년차 우투수로 올 시즌 KT 선발진에 큰 힘을 보태고 있다. 하영진은 “KT 김민 선배가 롤 모델이다. 투구 영상을 보면서 정말 멋지다고 느꼈다. 빠른 공과 부드러운 투구폼이 인상적이었다”고 부러워했다.
이번 대회 목표는 최소 16강 진출이다. 강호 충암고를 넘어서야 하는 쉽지 않은 과제지만, 하영진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그는 “경북고도 전통의 강호다. 많은 이들이 우리가 이길 것으로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앞으로도 잘해서 최소 16강까지는 오르고 싶다”고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