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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끊어둔 제주행 티켓 물려… 제주고, ‘발야구’로 만든 황금사자기 1승 [황금사자기]
입력 2026-05-04 15:05:00

제주고 야구부 선수들이 4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제80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 1회전에서 서울 자동차고를 5-3으로 꺾은 뒤 경기장을 나와 단체 ‘셀카(셀프 카메라)’로 추억을 남기고 있다. 김진원 씨 제공


“오늘 제주행 비행기 표 취소해주세요.”

박재현 제주고 감독이 휴대전화 너머로 이렇게 말하자 더그아웃에서 짐을 챙기던 선수들이 뜨거운 환호로 화답했다. 2024년 이후 2년 만에 황금사자기에 출전한 제주고는 원래 4일 첫 경기를 마친 뒤 같은 날 오후 5시 20분 제주행 비행기에 오를 예정이었다. 2002년 창단해 아직 고교 야구 4대 메이저 대회 우승이 없는 약체팀으로 승리보단 탈락을 먼저 떠올렸다.

그러나 제주고는 이날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제80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 1회전에서 서울 자동차고를 5-3으로 꺾고 ‘1승’을 챙겼다. 7일 경기항공고와 2회전을 치르게 되면서 당장 이날 예매해뒀던 비행기 표부터 취소해야 했던 것이다.

이날의 승리는 제주고 포수 신승윤의 빠른 발에서 만들어졌다. 신승윤은 3-3으로 맞서던 8회말 주자 2, 3루 때 3루수 방향 내야 안타를 쳤다. 그 사이 모든 주자가 홈을 밟으며 2타점을 기록했다. 역전 적시타를 친 것도 모자라 후속 정수호 타석 때 2루와 3루를 거푸 훔치며 3루까지 파고들었다. 신승윤은 앞선 6회 3-3 동점을 만드는 중견수 희생플라이를 치는 등 3타수 2안타 3타점으로 활약했다. 신승윤은 “경기 전부터 몸을 사리지 말자고 다짐했었다. 경기가 끝났을 때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제주고 중견수 윤열음와 오른손 투수 이지훈, 포수 신승윤(왼쪽부터)이 4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제80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 1회전 승리한 뒤 그라운드에서 ‘화이팅’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신승윤은 중학교 3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다. 또래들이 초등학교 3, 4학년 때부터 야구를 배운 것과 비교하면 ‘늦깎이’인 셈이다. 신승윤은 “남들보다 늦게 야구를 시작했기 때문에 나는 더 빨리 뛰어야 한다. 7일 경기에서도 후회 없이 뛸 것”이라며 웃었다.

치고 달리는 신승윤을 바라보는 박 감독의 마음은 대견함 반, 미안함 반이다. 제주고의 포수는 사실상 신승윤 1명뿐이기 때문이다. 2주 전 고교 2학년 포수가 전학을 왔지만 경기를 뛰기에는 이른 상황이다. 박 감독은 “백업 포수도 없는 상황이라 (신)승윤이를 아끼려 했는데 자기가 알아서 치고 달리고 다 해줬다”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신승윤과 함께 이 경기에서 3타수 2안타 1타점 1득점으로 활약한 중견수 윤열음은 올해 황금사자기를 위해 칼을 갈았다. 윤열음은 2년 전 고교 1학년 때 제 78회 황금사자기 때 대타로출전했지만 당시 2회전에서 패배하며 일찌감치 짐을 싸야 했다. 윤열음은 “다음 황금사자기 때 내가 주전으로 나가게 되면 꼭 승리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2년 전 패배했을 때 다졌던 그 초심으로 뛰었다”고 했다.

제주고 야구부 선수단과 코칭 스태프들이 4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제80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 1회전 승리를 거둔 뒤 총을 쏘는 세리머니를 하며 단체 사진을 남기고 있다. 이날 ‘발 야구’로 팀의 승리를 이끈 포수 신승윤은 “‘총알처럼 출루하겠다, 이미 출루해 있다’는 뜻의 세리머니”라며 웃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6회 2사후 제주고의 두 번째 투수로 나선 이지훈은 3과 3분의 1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승리 투수가 됐다. 이지훈은 이날 자신의 투구에 95점(100점 기준)을 줄 정도로 자신감이 넘쳤다. 이날 이지훈은 삼진 7개를 잡는 동안 4사구는 한 개도 내주지 않았다. 최고 시속 145km대 패스트볼에, 낙차 큰 커브로 상대 타자들을 돌려세웠다. 이지훈은 “조규제 투수 코치님께서 ‘네 공만 믿어라. 아무도 못 친다’고 말해주신 덕분”이라며 “다음 경기에도 나와서 팀의 승리 투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황금사자기에 출전한 고교 중 집에 가는 길이 가장 먼 제주고는 7일 경기를 마친 다음 날인 8일 제주행 비행기 표를 예매했다. 박 감독은 “2회전이 끝나고 비행기 표를 취소하는 기적이 또다시 일어났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제주고의 황금사자기 역대 최고 성적은 2016년 대회 때의 8강이다. 전년도 준우승팀 대구 상원고를 16강에서 꺾었다. 올해는 그보다 더 높은 곳이 목표다. 그러나 일단은 승리의 기쁨을 먼저 만끽하려 한다. 윤열음은 “오늘 저녁엔 애들이랑 다 같이 한강에 가서 치킨 파티를 할 것”이라며 해맑게 웃었다. 2승을 거둔 뒤에는 어디를 가보고 싶냐는 질문에 선수들은 입을 모아 “롯데월드”라고 답했다. 이 모든 이야기를 듣고 있던 박 감독은 흐뭇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며 ‘오케이’ 사인을 내렸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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